【연재】요세인조화

작가

쿠사나기 진

삽화

코조우

요세인조화【제1회 망령】

 여러 번의 날카로운 파열음이 정적을 찢고 한밤의 숲속으로 울려 퍼졌다.

 무성하게 우거진 숲속에서 흘러나오던 벌레들의 울음소리는 세련되지 못한 그 소리에 순식간에 사라졌고,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에 의해 무대가 바뀌기 시작했다.

 소리가 발생함과 동시에 여기저기 생겨난 불꽃은 어둠 속에서 한 순간의 강렬한 광채를 발하고는 사라졌는데, 흡사 덧없는 반딧불이를 연상케 했다.

 만일 이 광경을 밖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시끄러운 소리만 제외한다면 아름답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복판에 있는 이의 입장에선, 최소한 그런 느긋한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잠깐, 잠깐?! 저건 대체 뭔가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거목 그림자 밑에 숨으며 외치는 두 명의 여성.

 한 명은 피안화를 떠오르게 하는 선명한 붉은 트윈테일에 같은 빛깔의 눈동자, 잘생긴 눈썹에서 쾌활한 성격이 엿보였다. 여성스러운 몸매에 흐트러진 반소매 옷이 특징적인 “사신”, 오노즈카 코마치다.

 커다란 낫을 안고 있지만, 끝부분은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하게 휘어 있었다.

 딱히 특수한 능력이 숨겨진 낫 같은 게 아니라, 스스로를 사신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라고 한다.

 이런 때마저도 놓지 않고 단단히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사신으로서의 프로 의식은 똑바로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 그런 코마치 곁에서 눈물을 머금고 있는 건, 새하얀 피부와 파란 눈동자를 가진 소녀, 콘파쿠 요우무이다.

 얼핏 보면 쌀쌀맞게 느껴지는 색조와는 반대로, 또렷한 눈과 짧은 콧날, 둥그스름한 뺨과 작은 턱을 가졌다. 짧게 잘라 정돈한 은빛 머리칼에 검은 리본을 묶고, 하얀 블라우스에 녹색 조끼로 갖춰 입은 모습은 그녀의 단정하고 애교 있는 얼굴을 활동적으로 완성해 주고 있었다.

 그렇긴 하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맹수 앞에서 떠는 작은 동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야 갑자기 시비 걸리는 건 익숙한데요! 그래도, 저런 것들은……!”

 조우했던 때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울상인 채 외치는 요우무.

 코마치는 요우무의 “체질”을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인가 생각했지만, 싫은 건 이유를 막론하고 싫은 것이리라.

“너도 갑자기 베려고 달려드는 타입이니 말이지.”

 비상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먼 곳을 보듯이 조용히 중얼대는 코마치.

 요우무는 “일단 벤다”라는, 누가 들어도 묻지마 범죄자나 할 법한 소리를 하곤 했다. 코마치도 역시 그 대사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제, 제 얘기는 됐고요! 빨리 어떻게 좀 해야죠!”

“일단 진정하라고. 어서 평소의 묻지마 범죄자로 돌아와.”

“뭐가 묻지마 범죄자입니까! 누가 들으면 오해해요!”

“아니, 진짜로 오해인지 아닌지, 이번 기회에 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는데.”

 주변을 의식하지 못한 채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지우듯, 그녀들이 방패로 삼던 나무 줄기에 무언가가 부딪혔다.

 돌이 날아온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두 사람이 등을 댄 쪽까지 날카로운 충격이 전해졌다.

 이래선 어중간한 나무 같은 걸 방패로 삼았다간 손쉽게 관통당할 것이다.

 상황을 보려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에서 바람이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요괴나 요정 등이 쏘는 탄막과는 다르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공간을 갈랐다.

 직격당하면 어떻게 될까?

 코마치의 머리에서 불현듯 핏기가 사라졌지만, 그래도 살며시 고개를 돌려 보니, 시선이 향한 곳엔 이형체들의 모습이 보였다.

 밤의 어둠 속에 녹아들 듯한 짙은 초록색 의복. 그것을 몸에 두른 육체의 피부는 생기를 잃은 데다가, 군데군데 육체가 부서져 있었기에 한층 더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드러난 백골의 눈구멍으로는 심연과도 같은 어둠만이 보였다. 그 너머에는 녹색 인광이 눈동자 대신 켜진 채 원망의 불꽃을 불태우고 있었다.

 코마치가 느끼기에는 자기보다도 훨씬 더 사신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이형체들의 손에 들린 채 이쪽을 향해 불을 내뿜는 것은, 철과 나무가 합쳐진 지팡이 같은 것이었다.

 요우무와 코마치, 두 사람은 모르지만, 이 땅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물건의 이름은 바로 총이었다.

 Karabiner 98 Kurz, 바깥 세계의 나치 독일에서 개발된 볼트액션식 소총으로, 구경은 7.92mm, 장탄수는 5발.

 제식으로 채용된 1935년 시점에는 이미 반자동소총으로 옮겨가던 시류 탓에 구식화되긴 했으나, 명중률이나 안전장치의 설계가 뛰어나고, 높은 신뢰성이나 생산성을 가졌기 때문에 총생산 수는 1,400만 정이 넘었다.

 물론, 그러한 제원 같은 걸 그녀들이 알 리는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발로 커다란 피해를 부르리라는 것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탄환과 그것들을 통해 전해지는 살기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저기, 이거 분명히 탄막놀이는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맞으면 죽는 거 아닌가요?!”

“……뭐, 생각해 보면, 환상향에도 제대로 맞으면 죽을 만한 탄막은 얼마든지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요!”

 환상향에도 “죽기 싫으면 손 대지 마”라며 진짜로 죽일 듯 속삭이는 이가 존재한다는 걸 요우무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쓸데없는 짓만 안 하면 본인들이 먼저 습격하는 일은 없다. 쉽게 말해 그들의 영역에 다가가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수수께끼의 집단은, 명백히 먼저 죽이려 들고 있다.

“아니, 애초에 왜 절반은 영체인 네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그야 해골을 드러낸 시체 같은 게 이상한 복장으로, 괴상한 무기를 들고 표정 없이 죽이러 오잖아요!! 아무리 봐도 괴담에나 나올 법하지 않나요?!”

 이 상황에서 침착하게 의문을 표하는 코마치에게, 요우무는 딴에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최소한 장난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본인은.

“그냥 만들어낸 이야기라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현실미가 느껴진단 말이지. 이거 완전히 우리를 죽일 기세잖아.”

“아니, 근데 왜 그렇게 침착하신 거예요?!”

 이런 상황인데도 코마치는 묘하게 의젓해서 든든하게 느껴졌다. 아니면 성격이 이상하리만치 대담할 뿐인 걸까?

“음, 그야 사신이니까 그렇지.”

“무슨 이유가 그래요?!”

“난 딱히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그보다 ‘저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힘이 인간마을 같은 곳을 향했다간……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그때 요우무는 코마치의 눈동자에 우려의 기색이 드러난 것을 깨달았다.

 사신의 침착한 모습을 보고, 어지러웠던 요우무도 서서히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건……”

 혼란 상태였던 요우무도 조금씩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그녀들이 원래 있던 명계가 아니었다.

 현계—환상향이라 불리고, 사람과 요괴가 함께 사는 환상의 땅이었다.

 애초에 환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긴 하나, 그곳은 살아 있는 존재가 사는 장소이고, 죽은 자는 당연하게도 혼이 되어 피안으로 옮겨 간다.

 코마치 입장에서는 환상향 담당 사신인 자신의 일이 늘어나는 것을 기피하고 있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이 가져올 결과가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이 이변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으면, 이 땅에 사는 강대한 힘을 가진 자들이 다 같이 날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몇 번 일어났던 이변도 원인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자칫 잘못됐다간 큰 참사로 발전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이변들 중 일부에 엮였던 이 두 사람에게, 좋지 않은 기억은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저것’이 우리가 찾고 있는 이변의 정체라면, 여기서 도망칠 수는 없겠지.”

 요우무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코마치.

“으으…… 알겠어요, 알았다고요……”

 여전히 눈물을 머금고 있던 요우무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저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베면 알 수 있다는 말이죠!”

“아,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상한 방면으로 발상을 전환한 요우무는, 천천히 일어나 등에 멘 그녀의 키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긴 도로 손을 뻗었다.

(음,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뭐, 어때.)

 터무니없는 논리에 어이없어하던 코마치였으나 겨우 의욕을 내기 시작한 요우무를 막지는 않고, 적당한 동의를 표하고는 솜씨 좋게 도를 뽑은 소녀를 가볍게 손을 흔들며 보냈다.

 몸을 지키던 나무 그림자에서 뛰쳐나간 요우무는 한밤 중의 숲속을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이런 심플한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이상 쓸데없는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지, 요우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이지 뒤숭숭한 소리였다.

 하지만, 요우무는 여기서 분별없이 뛰어들진 않았다.

 어쨌든 요우무는 삼월정과는 다르게 요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위의 나무들은 사람 손에 관리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불규칙하게 우거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동력으로 상대를 농락하려고 해 봤자, 오히려 한밤 중의 숲속에서 무언가에 부딪혀 움직임이 막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나무들을 방패로 삼으며 상대와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 제일이다.

“그저, 벤다!”

 한번 도를 뽑음으로써, 요우무의 의식은 완전히 전환되었다.

 의식에 새겨진 “베어서 깨닫는다”는 문구를 머릿속으로 외쳐서, 미지의 존재에 대한 솟아나는 공포심을 보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암시와 같은 것이지만, 그리 함으로써 제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대단하기도 하다.

 때때로 진행방향에서 눈부신 광채와 함께 무언가가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날아왔지만, 요우무는 그것을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꿰뚫어 보거나, 혹은 나무들을 방패로 삼아 견디며 상대와의 거리를 급속히 좁혀 나갔다.

 다행히도 상대가 가진 무기는 연달아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무리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탄막놀이”가 더 위협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요우무가 방심하는 일은 없었다.

 검술 대련에서 한 순간의 틈이 승패를 좌우하듯, 만일 저 공격이 몸 어딘가에 맞았다간 즉시 기동력을 잃고 목숨까지도 위협받을 것은 명백했다.

 상대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방심했다가 패배를 맛본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건 접어 두고 질주했다.

 최적이자 최단거리인 루트를 도출한 뒤, 눈앞의 적을 베어 넘긴다.

 그것이 전투모드로 돌입한 요우무의 사고였다.

“그 정도 밀도에 맞을쏘냐!”

 해골 무리는 불길할 정도로 무표정한 그대로, 다가오는 적을 포착하려 총구를 좌우로 움직였지만, 조준을 하지 못한 채 요우무의 경묘한 움직임에 농락당하여 탄약을 낭비할 뿐이었다.

“지금이다!”

 반인반령의 검사는 마침내 번쩍이는 총화를 빠져나와, 그들을 자신의 사거리 안에 들였다.

 그 눈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총구. 어둠 속에 떠오른 총구가 지옥으로 이어진 나락을 방불케 했다.

 당했구나 생각하던 그 찰나에, 요우무는 자신을 둘러싼 시간 그 자체가 멈춘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렇다면 벨 수 있어!)

 여우무는 개의치 않고 무릎을 살며시 굽히며, 위에서 아래로 겨눈 장도, 누관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틈을 주지 않고 수직으로 떨어진 칼날은, 허공을 가로지르는 탄환을 정확하게 둘로 갈랐다.

“저걸 베다니?!”

 엿보고 있었는지, 튀어나온 코마치의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시선 너머에는 표정을 갖지 않은 망령의 눈동자에 켜진 인광이 경악에 떨린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기습이 불발로 끝난 요우무는, 한번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쪽으로 물러났으나 착지와 동시에 지면을 박차며 전진했다. 물러나는 척하면서 마무리를 지으러 가는 것이다.

 다시 갖춘 총이 요우무를 노리고 불을 뿜었지만, 그때는 이미 그녀의 몸은 사선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깊게 파고들어 총구 아래를 빠져나가듯 전진하며, 요우무는 이미 선회하던 누관검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오른쪽 아래에서 위로 그어진 일섬은 짙은 녹색 옷을 베어내며, 그 아래의 신체에도 아무런 저항 없이 칼날을 통과시켰다.

“?!”

 하지만, 베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요우무는 놀랐다.

 실제로 상대의 움직임이 둔해지기는 했으나, 상대의 눈동자에 박힌 인광은 사라지지 않았다.

 베어낸 줄 알았으나 피해를 못 입혔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요우무의 이마에 한 줄기 땀이 흘렀다.

 그럼, 왜 이 두 사람이 한밤 중의 숲에서 “탄막놀이”를 하지 않고, 화약 냄새 나는 총화 아래에서 싸우려 하고 있는가?

 그에 관해서는 잠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한국어 번역/Chlorine

일러스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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