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 이벤트 「하쿠레이신사 예대제」는 ZUN 씨가 명명한 것! 신주를 자처하게 된 이유는? 「동방은 종교」인가요?
[제7회]
“하쿠레이신사 예대제”는 ZUN 씨가 직접 명명
-2003년 8월에 『요요몽』으로 「동방」의 인기가 높아지고 약 1년 뒤, 『영야초』가 나오기 조금 전인 2004년 4월에 제1회 “하쿠레이신사 예대제(博麗神社例大祭)【※】”가 개최되었습니다.
2004년부터 매년 봄 무렵에 개최되고 있는 동방Project 온리 동인지 즉매회. 「예대제」라 줄여 부르는 경우도 많다. 2018년에는 참가자 수가 총 52,000명이 되는 등, 한 장르에 한정된 온리 이벤트로는 일본 내 최대급의 규모를 가졌다. 또한 현재는 「하쿠레이신사 추계예대제(博麗神社秋季例大祭)」나 「하쿠레이신사 예대제 in 대만(博麗神社例大祭in台湾)」도 개최되고 있다.
히로유키 씨:
예대제가 그런 시기부터 열렸던 거군요.
-이건 당시의 주최자에게서 “온리 이벤트【※】를 하게 해 주세요” 하는 문의가 ZUN 씨에게 왔던 건가요?
※온리 이벤트
동인지 즉매회 중에서 한 장르나 작품, 캐릭터 등에 한정된 내용의 동인지만을 다루는 것을 가리킨다. 종합적인 즉매회보다 규모는 작지만, 취향이 같은 팬이 모이기 쉬우므로 보다 심도 있는 이벤트가 되기 쉽다.
ZUN 씨:
왔죠. 하지만 전 애초에 온리 이벤트라는 게 있단 걸 몰랐어요. 코미케도 잘 모르는데, 코미케 이외에 관해선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웃음).
히로유키 씨:
코미케 이외에 그런 이벤트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요?
ZUN 씨:
몰랐죠. ‘동인이라는 건 자기가 만든 물건을 팔 수 있는 장소인 건가?’ 이 정도밖엔 생각 않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온리 이벤트에 관한 문의가 와도 ‘하면 되는 거 아닐까?’ 정도의 느낌이었죠.
다만 정말로 사람이 모일까 하는 점이 불안했고, 또 당시의 주최자분이 생각한 이벤트 이름이 형편없었거든요(웃음). “하쿠레이신사 예대제”라는 이름은 제가 직접 붙인 거예요.
히로유키 씨:
아하~ 상대방이 생각한 제목은 무엇이었나요?
ZUN 씨:
“몽환창세기(夢幻創世記)”(웃음).
무슨 게임의 이벤트인지도 모르겠고, 그 자체로 게임 이름 같잖아요(웃음). 역시 이건 아니지 싶어서, “이름은 제가 생각하겠습니다” 했죠. 2차창작 이벤트의 이름을 왜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건가 생각하면서(웃음).
히로유키 씨:
말이 2차창작이지, 이름을 ZUN 씨가 생각했으면 그건 이미 ZUN 씨의 이벤트 아닌가요?
ZUN 씨:
저 자신은 예대제의 운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하나의 서클로서 참가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실제로 저는 「동방」의 온리 이벤트 중에서 예대제밖에 안 나가고 있는데요, 그건 역시 명명자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예대제는 공식은 아니지만, 다른 즉매회와는 다르네요.
히로유키 씨:
본인이 만든 것을 써서 다른 사람이 2차창작을 하고 있는 걸 처음 봤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ZUN 씨:
2차창작이라고 해도, 어느 단계까지인지가 알기 어렵지만요. 제 캐릭터 그림을 다른 사람이 그리는 걸 봤을 때는 순전히 기쁘죠. ‘이렇게 잘 그려 주는구나’ 하고요(웃음).
칼럼1 “신주”를 자처하는 이유
「동방」이 이렇게까지 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제1회 예대제 뒤에 2004년 8월 여름코믹에서 『영야초』가 발표됩니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당초엔 여기서 일단락할 생각이셨나요?
ZUN 씨:
제가 하고 싶은 건 다 했다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만 「동방」의 규모가 이렇게까지 커지리라고는 역시 생각하지 못했지요.
이렇게까지 커진 것을 이대로 그만두다니, 아까워서 못하죠.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 이상 좀 더 해 보고 싶다.” 『영야초』를 냈을 때의 마음은 그런 느낌이었네요.
-마침 이 무렵부터 잡지 연재나 서적 등의 형태로 「동방」이 게임 이외로도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동방문화첩 ~ Bohemian Archive in Japanese Red(東方文花帖 ~ Bohemian Archive in Japanese Red)』【※】의 단행본이 나온 게 2005년 8월인데, 이때는 아직 샐러리맨이셨죠?
ZUN 씨:
일도 멀쩡하게 하고 있었어요(웃음).
히로유키 씨:
게임도 만들고, 음악도 만들고, 원고도 쓰고, 게다가 일도 하고. 이때는 꽤 살인적인 스케줄 아니었나요?
ZUN 씨:
바빴죠. 지금도 바쁘지만요.
-『영야초』 발매 뒤, 도중에 변칙적인 룰을 가진 슈팅도 등장하면서 2007년 8월에 “평소의 종스크롤 슈팅”의 다음 작품인 『동방풍신록 ~ Mountain of Faith.(東方風神録 ~ Mountain of Faith.)』【※】이 발표될 때까지 3년 간의 공백이 있죠. 이 동안에는 어떤 심경이었나요?
ZUN 씨:
다시 한번 같은 게임을 만들기보다는 「동방」을 그만두고 다음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아니면 회사 일에 더 힘을 주어야 할지, 인생에 대해 좀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는 한편, 저는 신작 게임을 안 만들고 있는데 유저분은 점점 늘어났고요. 이렇게 흥하는데 「동방」을 그만두는 건 아니지 싶었고, 오히려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또 「동방」을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게 『풍신록』이네요.
상업 서적의 집필을 시작한 계기
-「동방」이 상업 잡지나 서적으로도 전개된 건, 편집자인 오코노기 테츠로(小此木哲朗)【※】 씨와의 만남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만.
※오코노기 테츠로
과거에 이치진샤에서 「동방」 관련 서적이나 만화의 편집을 담당했다. 현재는 KADOKAWA에 소속된 채로 동방Project 공식 매거진인「동방외래위편 Strange Creators of Outer World.(東方外來韋編 Strange Creators of Outer World.)」 등의 편집을 맡고 있다. 「두 잔째부터 시작하는 라디오(2軒目から始まるラジオ)」의 첫 어시스턴트.
ZUN 씨:
오코노기 씨와 처음 만난 건, 제1회 예대제 때였네요.
-「동방」의 경우, 서적도 단순한 팬북이 아니라 ZUN 씨의 개인적인 표현으로 채워져 있는데요, 어떻게 실현한 것인지 신기합니다.
ZUN 씨:
오코노기 씨도, 다른 편집자분들도 처음엔 “앤솔로지를 내지 않으실래요?” 하고 찾아왔어요. 근데 그건 “2차창작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좋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책을 내지 않으실래요?” 하는 얘기란 말이죠. 그런 건 저는 못합니다. 2차창작을 하는 사람은 다들 맘대로 내고 있으니까, 그걸로 괜찮지 않나 해서요.
그랬더니 이번엔 “설정자료집을 냅시다” 하더군요. 하지만 딱히 게임의 설정도 없고, 자료를 모으는 것도 귀찮아서 그것도 싫었어요. 그러다 보니 수수께끼의 기획 서적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웃음).
히로유키 씨:
하지만 원고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게 게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힘들지 않나요?
ZUN 씨:
힘들지만, 그게 더 재미있으니까요. 지금도 그걸로 목이 죄어들고 있지만요. ‘앤솔로지로 하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하면서요(웃음).
(제8회에서 계속)
진행자/히로유키(ひろゆき), 사이토 다이치(斉藤大地)
글/이토 세이노스케(伊藤誠之介)
카메라맨/후쿠오카 료지(GEKKO)) (福岡諒祠(GEKKO))
한국어 번역/Chlorine
온리 이벤트 「하쿠레이신사 예대제」는 ZUN 씨가 명명한 것! 신주를 자처하게 된 이유는? 「동방은 종교」인가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