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ZUN 씨 “처음엔 연수차 오락실 점원”, 코미케로 복귀해서 WIN으로 「동방」을 만들기까지(히로유키 씨는 2시간 늦게 도착)

[제4회]

다른 사람과의 공동작업은 “귀찮다”

-ZUN 씨는 프로그램을 독학으로 습득했다고 하셨는데, 음악 만드는 법도 아무한테도 안 배우신 거죠?

ZUN 씨:

 아직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일러스트도 직접 그리고 계시죠.

ZUN 씨:

 사실 처음엔 친구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귀찮아서(웃음).

-전부 다 직접 하는 게 더 귀찮지 않나요?

ZUN 씨:

 혼자서 하는 게 편해요. 독학했던 것도, 남에게 듣는 것보다 직접 여러모로 시험해 보는 게 편했기 때문이거든요. 그게 더 재미있습니다.

-게임 제작의 모든 공정을 혼자서 맡으면서, 게다가 그 일을 20년이나 계속하는 사람은 아마도 ZUN 씨 이외에는 없을 거라 봅니다. 호리이 유지 씨나 나카무라 코이치(中村光一)【※】 씨처럼 게임의 여명기 때에 혼자 만들던 분들도, 그 뒤로는 팀으로 만들게 됐으니까요. 보통은 일러스트, 프로그램, 음악 중 어느 하나 정도는 다른 사람에게 의뢰한단 말이죠. 그 모든 걸 혼자서 만들고 있는 건, ZUN 씨가 온리 원이라 생각합니다.

※나카무라 코이치

1964년, 카가와현(香川県) 출생. 주식회사 스파이크 춘 소프트(株式会社スパイク・チュンソフト) 이사 회장. 고교생 시절에 독학으로 제작한 게임 『도아도아(ドアドア)』로 에닉스(エニックス)(당시)가 주최한 게임 콘테스트에 입상하여 프로 게임 제작자가 된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개발을 거쳐 『카마이타치의 밤(かまいたちの夜)』, 『풍래의 시렌(風来のシレン)』 등으로 새 장르의 게임을 잇달아 출시하였다.

ZUN 씨:

 그 세 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모여서 최소한 세 명이 되면, 게임 제작은 어떻게든 되죠.

-하지만 ZUN 씨는 그런 방식을 한 순간 생각했을지언정, 귀찮아서 안 하신 거죠?

ZUN 씨:

 남과 의견을 주고받는 게 귀찮단 말이죠. “여기는 좀 이렇게 하는 게 나아”라든지, 서로 말하는 게 귀찮아서요. 아무래도 삼가게 되고요. ‘사실은 별로 안 좋지만, 기껏 그려 준 거니까…’ 하는 식으로, 분명 그렇게 될 제가 상상이 되거든요.

칼럼1 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게임회사에 프로그래머로 취직

-대학을 졸업하고 샐러리맨이 되셨는데요, 타이토에선 바로 게임 개발 현장에 뛰어드셨나요?

ZUN 씨:

 처음엔 연수차 오락실 점원을 꼭 해야만 했거든요. 그건 그것대로 힘들었네요. 지금까지 계속 집에서 게임을 만들던 인간이 갑자기 오락실 점원을 하는 거니까요(웃음).

 다만 평일 낮에 오락실에 있으면, 인간 관찰이 재미있단 말이죠. “이 샐러리맨은 아침부터 계속 『상하이(上海)』【※】를 하고 있는데, 회사엔 가는 건가?”라든지(웃음).

※『상하이』
산더미처럼 쌓인 마작패에서 두 개의 같은 패를 골라 지워 나가는 퍼즐 게임. 1986년에 미국의 액티비전(アクティビジョン)사에서 발매되었고, 그 뒤로 다수의 하드웨어로 등장했다. 아케이드판은 1988년에 선소프트(サンソフト)에서 발표된 이래로 시리즈화되고 있다. (사진은 playstation.com에서 발췌)

-그런 식으로 연수를 끝내고 드디어 게임 개발 현장에 참가하게 되는데요, 당시의 개발 현장은 분위기가 어땠나요?

ZUN 씨:

 처음에 높으신 분이 “개발 현장은 나쁜 의미로 굳어 있으니까, 젊은 사람이 그걸 부숴 줬으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신인이니까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부탁을 받고, 그걸 하다 보면 점점 같은 사고방식이 된단 말이죠(웃음).

 어느새 개발 쪽에 들어가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에 ‘그런 거 안 팔려’라며 돈을 내어 주지 않는 상사가 잘못이지” 하는 말을 꺼내게 됐고요. 개인으로 할 때는 그런 사고방식은 플러스가 될 거라 봅니다만, 회사 입장에서 보면 그건 안 되지 않나 싶더군요. 회사는 그런 사실을 깨닫는 장소였네요.

칼럼2 회사에서의 공동작업

히로유키 씨가 2시간 늦게 등장!

-샐러리맨 시대의 경험 중, 그 뒤로도 살리고 있는 건요?

ZUN 씨:

 잔뜩 있어요. 그 덕분에 지금은 최소한 사회인답게 돼 있고요(웃음).

 계속 독학으로 게임을 만들었으니, 회사에 들어가 비로소 제대로 게임 만드는 법을 배울 수가 있었으니까요. 독학한 것치고는 꽤 비슷한 방법으로 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면서도, ‘이런 좋은 방법도 있구나’ 하고 깨닫기도 하고요. 덕분에 여러 아이디어가 나와서 좋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동인활동을 재개하게 되는데요… 아니, 히로유키 씨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히로유키 씨:

 수고하십니다. 너무 늦어 버렸군요(웃음).

ZUN 씨:

 이미 반평생 중 반 정도는 끝났어요(웃음).

-일단 모두 모였으니, 다시 건배할까요?

전원:

 건배~!

일을 하면서 코믹마켓에 복귀

-그럼 샐러리맨이 되고 더 이상 안 나갈 줄 알았던 코믹마켓에 다시 나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시작으로 마저 진행해 봅시다.

히로유키 씨:

 사회인이 될 필요 없었던 거 아닌가요? 동인으로도 먹고 살 수 있었죠?

ZUN 씨

 먹고 사느냐, 못 먹고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죠. 학생은 졸업하면 취직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으니까요.

-그런 ZUN 씨가 코믹마켓에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ZUN 씨:

 그건 말이죠… 제 마음대로 게임을 만들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거든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게임을 만들고 있어도, 이 게임이 재미없다는 건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죠. 그래서 안 팔리면, 어쨌든 간에 만든 사람 탓이 돼 버리고요. 그거 꽤 쓰라리거든요.

 그렇게 스트레스가 쌓일 때에, 오랜만에 코미케를 보러 갔어요. 정초 쉬는 기간에도 전부 회사에 가도록 결정이 난 상태였는데, 그런 와중에 2000년 무렵의 겨울코믹 회장에 갔죠.

 그래서 동인 게임 구역에 가 보니 제가 있던 때보다 훨씬 사람이 많아서, 동인 게임에 사람이 잔뜩 모여 있는 거예요. 하지만 게임이 나오는 수는 줄어서, 오후에 갔더니 그 즈음엔 시시한 게임들도 전부 품절됐더군요.

-2000년 무렵이면, 마침 동인 게임 플랫폼이 PC-9801에서 Windows로 바뀌는 시기네요.

ZUN 씨:

 맞아요. Windows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적어서, 지금 같으면 “무료여도 이런 거 안 해” 할 만한 것도 굉장히 잘 팔렸단 말이죠.

히로유키 씨:

 ‘일단 Windows로 게임을 내면 다들 사 준다’ 하는 식이었죠. 좀 거품이 끼었었네요.

ZUN 씨:

 그걸 보고, “나라면 더 재미있는 걸 만들 수 있겠어” 하고 생각했던 게 끝이었죠. 일이 굉장히 바빴던 시기였지만, ‘코미케 또 나갈까’ 하고 생각했어요.

(제5회에서 계속)

 

진행자/히로유키(ひろゆき), 사이토 다이치(斉藤大地)

글/이토 세이노스케(伊藤誠之介)

카메라맨/후쿠오카 료지(GEKKO)) (福岡諒祠(GEKKO))

한국어 번역/Chlorine

샐러리맨 ZUN 씨 “처음엔 연수차 오락실 점원”, 코미케로 복귀해서 WIN으로 「동방」을 만들기까지(히로유키 씨는 2시간 늦게 도착)